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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요리에 '아량·도량' 담은 철가방요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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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에 '아량·도량' 담은 철가방요리사

"아량, 도량 생각하시는 뜻 맞아요. 넓은 마음가짐을 갖고 살자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습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넷플릭스 예능 시리즈 '흑백요리사'에서 최종 8인에 들지 못했음에도 대중의 뇌리에 각인된 사람이 있다. 1대1 대결에서 패한 선배 셰프에게 큰절을 올리고, 방출 미션에서 다른 팀원을 배려해 "나를 찍어"라고 언급한 뒤 4단계 문턱을 넘지 못한 '철가방 요리사'다. 초지일관 엿보인 보기 드문 인성에, 중식집 배달부로 시작해 셰프의 자리에 오른 진짜 '흙수저'에게 많은 대중은 몰입하고 감동했다.

 

어린 시절, 힘든 가정환경을 딛고 요리사의 꿈을 이뤄냈다. 가진 것 없이 노력과 실력 하나로 유명 요리사 자리에 올라서면서 자연스럽게 단단하고 겸손해졌다. 그래서일까. 그는 넷플릭스 흑백요리사에서 80인의 '흑수저'를 대표하는 인물로 거론된다. 흑백요리사 포스터에는 최종 2인까지 올라간 에드워드 리와 함께 임 셰프가 정면에 등장한다. '흑수저'에 요새 말하는 '흙수저'의 뜻도 내포된 거라면 적격이다.

요리사를 꿈꾸게 된 계기는 뭐였을까. 그는 크게 2가지로 회상했다. 중식당 사장님에 스카우트된 일화와 우동 한 그릇의 기억이다.

임 셰프는 "어린 시절, 할머니랑 살다가 학교를 자퇴하고 고1 때부터 치킨집 아르바이트를 했다"며 "근처 중국집 사장님이 '일 잘한다'고 스카우트를 했다"고 회상했다. 이를 계기로 요식업을 잘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는 중국집에 취직해 요리를 배우고, 군대 가기 직전 한식당에도 취직해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웠다. 군대 역시 취사병을 지원했다고.

 
제대 후 아버지 뜻에 따라 돈을 벌기 위해 귀금속 공장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요식업을 향한 꿈은 더 강렬해졌다. 그는 2~3개월간 공장 퇴근 후인 저녁 9시부터 새벽 1시까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요리하는 '투잡' 생활을 반복하다 결국 모든 것을 접고 재출발하기 이른다.

서울 종로구 관철동 한 중국집에 취직했다. 이미 요식업 경력자였지만 월 180만원에 청소와 설거지까지 도맡아 하며 밑바닥부터 새로 시작했다. 어깨 너머로 요리를 배우던 그에게 기회는 우연히 찾아왔다. 면판장(면 반죽담당)이 된지 1년여가 흐른 시점이었다.

"선배들이 모두 쉬는 브레이크 타임에 손님 한 분이 들어와 우동을 주문하더라"며 "선배들이 없으니까 어깨 너머로 익혔던 우동을 만들어 처음으로 손님상에 내봤다"고 회상했다. 손님이 떠난 후 떨리는 마음으로 받아든 그릇은 국물조차 남김없이 싹싹 비워진 상태였다. "정말 행복했죠." 그때를 회상하던 임 셰프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이를 계기로 30세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자본이 없던 탓에 하루 매출 5만원 미만이던 지하 자리에 첫 중식당 '아량'을 열었다. 업자들 사이 '목 안 좋은 자리'였지만 맛집 소문이 나면서 '대목 자리'가 되는 데 1년 8개월이면 충분했다. 그는 첫 가게에서 모은 돈으로 지상 1,2층 50평 넘는 건물을 임대해 가게를 옮기고 7년여간 운영했다. '아량'은 2021년 새로 연 프리미엄 중식당 '도량'에 집중하려 지난 4월 문 닫았다. 대신 '아량'의 요리는 '도량'에서도 맛볼 수 있게 했다.

 

지금이라도 빛보게 되셔서 너무 다행이에요 

앞으로도 아량과 도량을 듬뿍넣은 요리 만들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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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열정적인라임W116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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