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분다 고음에서 거칠게 나오는게 허스키 하면서 정말 멋진거 같더라구요
한일톱텐쇼 6회, 후쿠다 미라이와 강남이 함께 부른 유리의 기억을 처음 봤을 때 제일 먼저 꽂힌 건 노래보다 표정이었어요. 시작하자마자 다 같이 소리 질러를 외치는 강남 쪽 에너지와, 살짝 낯설어하면서도 금방 리듬을 타는 미라이의 얼굴이 동시에 잡히는데 그 두 온도가 묘하게 잘 섞이더라고요.
이 무대는 애초에 정공법 발라드가 아니라 축제 한복판에서 부르는 록 트롯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어요. 원곡이 일본 밴드 TUBE의 곡이고, 국내에서는 캔의 내 생에 봄날은으로 익숙한 멜로디라서 그런지, 첫 구간부터 관객 박수가 리듬처럼 같이 붙습니다. 강남이 한국어 가사를 치고 나가면, 미라이가 일본어 원곡 가사로 이어받는데 언어가 바뀌는 지점이 어색하지 않고, 한 기억을 두 사람이 서로 다른 말로 교차해서 말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개인적으로 가장 재밌었던 건 이 무대의 촌스러움이었어요. 좋은 의미로요. 두 주먹을 꽉 쥐고 허공을 가르며 부르는 강남의 제스처, 한 박자 늦게 웃으면서 따라 하다가 어느 순간 완전히 몰입해 버리는 미라이의 움직임이 요즘 음악 예능에서 보기 드문, 90년대식 열정을 그대로 꺼내놓은 것 같았거든요. 가사를 곱씹기보다는 그 순간의 온도와 소리를 몸으로 밀어붙이는 무대라, 세련되다기보다는 솔직하다는 쪽에 가까웠습니다.
노래 중간에 촛불처럼 짧은 사랑이라는 가사가 지나갈 때 카메라가 관객석을 훑어가는데, 여기저기서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 부르는 모습이 잡혀요. 이 곡을 청춘 시절에 듣고 자란 세대와, 지금 무대 위에서 새로 부르고 있는 두 사람이 한 공간에서 겹쳐지는 순간이라 그런지, 마이크를 쥐고 있는 건 강남과 미라인데 정작 추억의 주인은 객석 쪽에 더 많이 앉아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후반부에 가까워질수록 곡은 더 힘을 받는데, 둘 다 고음에 진입하면서 목소리 질감이 점점 거칠어져요. 고운 텍스처로 끝까지 밀고 가는 대신, 약간 허스키한 소리가 섞이도록 그냥 두는 선택이라 라이브라는 사실이 더 선명하게 느껴졌어요. 이게 완벽하게 다듬어진 깔끔한 하모니라기보다는, 무대 위에서 둘이 직접 온몸으로 맞춰 가며 즉석에서 불을 키우는 합 같아서 보면서도 같이 텐션이 올라갔습니다.
마지막 후렴에서 객석과 무대가 같이 소리를 지르는 장면은, 유리의 기억이라는 제목과는 다르게 꽤 뜨겁게 끝나요. 손을 들어 올리라고 요청하는 강남의 멘트, 그걸 실제로 따라 하는 관객들, 옆에서 계속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미라이까지 합쳐져서, 곡이 가진 원래의 쓸쓸함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봄날 같은 기운이 더 크게 남았어요.
이 유리의 기억은, 기억이라는 단어와 달리 과거 회상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의 축제에 가까운 무대였다고 느껴졌습니다. 방송을 끄고 나서도 정확한 가사보다, 둘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소리 질러를 외치던 장면이 먼저 떠오르는 걸 보면, 이건 세밀한 감정보다 한 덩어리의 열기를 통째로 남기는 종류의 공연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