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마음에 유백만을 찾아가 강하게 항의를 해봤지만, 돌아오는 건 모욕뿐이었습니다. 그 시절 프로보노 강다윗은 대학 진학을 포기한 채 이 사건에 매달려 직접 변론하기 위해 법정에 서지만, 전관을 변호사로 세운 유백만에게 당할 수가 없었습니다. 차일피일 사건은 연기되고, 결국 혐의 없음으로 이 사건은 기각을 당하고 맙니다